종합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도 제도학파의 영향력은 그 본산지인 미국에서도 그렇게 절대적이라고는 볼 수 없다. (주명건, 1984:514)
제도학파에 관해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제도학파의 대표적인 학자인 베블런, 커먼스, 미첼, 갤브레이스의 사상과 신제도학파에 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학파경제학자들이 증가하였다. 당시 독일 경제학계는 역사학파경제학자에 의해 주도되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되고 전통도 없었기 때문에 역사학파의 사상이 그대로 전수되지 않고, 역사학파의 방법론을 따르면서도 다양한 사회적 집단의 갈등과 제도의 변화에 관심을
경제학은 철학의 한 분야 였으므로 스미스는 법률학 강의를 통하여 그의 탁월한 사상들을 전파하였다.
얼마후 모교가 있는 글래스고를 떠난 스미스는 어느 귀족의 개인교사자격으로 프랑스에 가게 되고 이곳에서 중농주의(重農主義 PHYSIOCRACY) 라 불리는 경제학파와 조우하게 된다. 중농학파의 창시자
경제학에 대해서도 자료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이것은 K. Marx의 사회주의경제학과 같은 비주류 경제학의 발생 원인과도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전 경제학의 배경과 대표적인 고전학파경제학자인 아담 스미스, 데이비드 리카도, 존 스튜어트 밀의 이론들에 대한 정리로 근대경제학
대한 승리를 거두는 것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기뻐했겠지만 별로 놀라워했을 것 같진 않다.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종교인들에게 대항했던 케인스는 진리가 인간을 자유롭게 하리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케인스는 ‘우리의 자손들에게 주어진 경제적 가능성’이라는 논문을 통해 아름다운 미래를
1. 곤경에 처한 경제학자들
경제학자란 힘든 직업이다. 그들은 단순한 전달자로써 인간은 어려운 선택을 해야만 한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위대한경제학자들은 그냥 전달자의 역할에서 그치는 데 만족하지 않아 세상 사람들의 조롱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케인즈도 지적했다시피 거의 모든 저명한
1. 곤경에 처한 경제학자들
경제학자란 힘든 직업이다. 그들은 단순한 전달자로써 인간은 어려운 선택을 해야만 한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위대한경제학자들은 그냥 전달자의 역할에서 그치는 데 만족하지 않아 세상 사람들의 조롱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케인즈도 지적했다시피 거의 모든 저명한
<곤경에 처한 경제학자들>
경제학자는 과연 필요한 직업일까? 기업이사진이며, 박애주의자, 정치가뿐만 아니라 심지어 문필가들마저 경제학자들을 모욕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은 억울하다. 그들이 나쁜 경제상황을 몰고 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전달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경제행위의 대부분은 농업에 관한 것이었다. 극소수에 의해서 움직여지는 폐쇄된 사회, 즉 사회 구성원 중의 소수만이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으므로 사회과학의 필요성은 매우 미미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당시는 노예제도가 성행되어 있었으므로 노동력 공급을 위한 자유노